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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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진단하고 전망한 책. 저자는 현재의 한국 경제는 개혁이라는 '덫'에 걸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개혁이라는 도덕적 오만이 기존의 모든 것을 거부하게 만든데다, 세계화는 필연이라는 경제학적 편견까지 겹치면서 영미식 신자유주의 제도 및 정책을 무절제하게 도입하여 투자 부진과 소비 위축 및 실업난, 절대 빈곤층 증가의 부작용을 만들어냈다고 파악한다. 그리하여 한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 개혁의 문제점들을 분석하여 개혁이라는 덫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방법을 고찰한다.
책속으로
누구를 위한 재벌 개혁인가? 현재 많은 사람들은 경제 개혁의 초점을 재벌 개혁에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재벌이라는 구조가 과다한 차입 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 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 구조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 특히 재벌 기업들이 금융 기관을 통한 차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온 주된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소유권 약화를 꺼린 기업들이 주식 시장을 통한 자금 동원을 기피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자본 축적의 역사가 일천한 관계로 기업 내부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데에도 원인이 있다. 게다가 비율로 따져 볼 때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보다 주식 시장을 통해 더 많은 자금을 동원했다. 1970∼1980년대에 걸쳐 우리 기업들이 신주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총 자금의 13.4%로 이는 미국(-4.9%), 독일(2.3%), 일본(3.9%), 영국(7%)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인 것이다. 또 고도의 차입 경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사항도 아니다. 흔히들 350∼400%라는 우리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병적으로 높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일본도 고도 성장기에는 500%대의 부채 비율을 기록했다. 또 우리나라의 부채 비율이 366%였던 1980년대에도 스웨덴(555%), 노르웨이(538%), 핀란드(492%)의 부채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았으며, 프랑스(361%), 이탈리아(307%)도 우리와 유사한 부채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항은 이 시기 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들이 부채 비율이 낮은 영국(148%)이나 미국 (179%)보다 경제가 훨씬 더 잘 돌아갔다는 점이다. 이와 반대로 브라질(56%), 멕시코(82%) 등은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부채 비율이 월등히 낮았음에도 경제 사정은 더 힘들었다. 부채 비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재벌 개혁을 바라보는 빗나간 시각들 다각화의 문제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은 ‘전문 기업’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업의 다각화는 위험을 분산하여 적극적 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기존 계열사로부터의 보조를 통해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돕는 장점이 있다. 한번 가정해 보자. 우리 기업들이 만일 전문화만 추구하였다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현재 우리나라 주축 산업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인지를. 물론 재벌들이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다각화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피라미드형 출자 등을 통한 ‘가공 자본’의 창조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가공 자본’은 내부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자본은 기본적으로 ‘가공적’인 것이다. 정부가 시중 은행의 지불 준비율만 조절해도 자본이 생겼다가 없어졌다 할 수 있고, 우리가 그토록 배우고 싶어 하는 ‘선진 금융 기법’의 핵심이 ‘더 효율적인 가공 자본의 창조’인 마당에 자본의 가공성을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가공된 자본이 부당한가 아닌가는 가공성 자체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가에 의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금융 개혁, 기업 금융 고갈 불러 재벌 개혁과 함께 추진된 금융 개혁이 금융 기관의 안정성과 수익성 제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금융 기관들이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기업 금융을 전면적으로 회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금융 기관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는 대폭 줄어들었다. 1996∼1997년 기간 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은행 및 비(`)은행 모두를 포함한 금융 기관으로부터의 차입이나 주식 발행,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118조 원의 외부 자금을 조달하였는데, 1998∼2001년에는 이것이 불과 31% 수준인 49.4조 원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특히 금융 기관 차입 분은 1996∼1997년 연평균 38.3조 원에서 1998∼2001년 연평균 -0.2조 원으로 완전 증발하였다. 결국 대규모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여타 기업들은 거의 외부 자금을 동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설령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대기업들이라 하더라도 외국인 소유 주식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투자에 점점 더 제한을 받고 있다. 외국인 주식 소유자는 주로 투자신탁이나 연기금 등 기관 투자가들인데, 이들의 경우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배당금이나 주가 차액 등의 이득에
출판사서평
1. ‘개혁’이라는 한국 경제의 덫
뮈르달 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이어 『개혁의 덫』에서 지은이는 왜 오늘의 우리 경제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경제 흐름을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게 할 방법은 없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래서 나오는 결론은? 작금의 경제 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제라는 변수 외에도 정치라는 변수에,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변수까지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지은이가 이런저런 사실의 적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현재 우리 경제는 ‘개혁’이라는 ‘덫’에 걸린 상태라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개혁론자들은 ‘개혁’을 내걸고 집권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의 부정적 유산, 특히 그들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절대악(???으로 규정해 온 비민주적 정권의 제도 및 정책과 절연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대안의 존재 여부인데, 마침 외환 위기 이후 세계화는 필연이라는 인식에 따라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과거와는 정반대이다. 시장 중심적 접근 방식은 개발연대의 정부 개입적 접근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그 골치 아픈 재벌 문제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는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다. 투명 경영, 주주 자본주의를 통해 가공 자본의 창출에 의한 1인 소유 및 문어발식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2.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우선 투자가 붕괴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실업난이 이어졌다. 청년 실업이 국가적 고민으로 떠오르고, 구조 조정 과정에서 물러난 중년층 실업자들은 노동 시장에서 일찌감치 퇴출되거나 소자본 자영업을 하다가 파산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 소비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짜낸 소비 진작 정책은 신용 불량자만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경기 침체를 가중시킨 것은 물론 가정 파괴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또 노동 시장을 유연화한다고 비정규직을 늘린 탓에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커졌다.
반면 주식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주주들의 영향력이 강해진 결과 기업들의 배당률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기업들의 이익이 과거와 같이 재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 대체로 상류층에 속하는 - 주주들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절대 빈곤층의 급증이다. 외환 위기 이후 절대 빈곤층은 국민의 5.9%에서 11.5%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과거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평등한 수준에 속하던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가 이제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하게 되었고, 자칫 잘못하면 미국을 제치고 멕시코 등 남미 국가의 대열에 끼게 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이다.
지은이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이냐’고 묻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혁론자들은 진보를 표방했다. 진보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상징한다. 그런데 현재의 개혁은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약육강식의 시장으로 몰아내고 있다. ‘개혁’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과거와의 절연만을 서두른 결과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3. 우리 경제, 그렇게 문제였나?
저자 장하준에 따르면 한국이 현재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거 경제 성장기에 채택했던 경제 정책을 다시 채택하면 된다. 문제점만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말이다. 그에 대해 쏟아지는 무수한 반론의 요지는 한 가지,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쓴 것은 바로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그게 말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경제사적으로 제시한다.
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은이가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 하나에 답해야 한다. 과거의 우리 경제가 과연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느냐는 질문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선진국들의 소득이 2배가 되는데 7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했다. 반면 1960년대부터 1997년 외환 위기 때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6% 가량으로, 40여 년이 지나면 소득이 8배가 되는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물론 이런 성장률 하나만으로 우리의 개발연대를 무조건 미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소득이 가나의 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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