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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장편소설

배수아 지음| 자음과모음 |2013년 04월 17일 (종이책 2013년 04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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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일 2013년 04월 17일 (종이책 2013년 04월 20일 출간)
    포맷용량 ePUB(4.48MB, ISBN 979118827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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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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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이 서로 녹아든 세계!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작가 배수아의 소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2012년 하반기에 계간 ‘자음과모음’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배수아가 독일 유학 이후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단편과 장편을 오가며 실험해온 비서사적ㆍ반서사적 소설 양식이 미학적으로 완성되었음을 보여준다. 현실이 꿈으로 전이되어 그 안에서 독자적인 구조로 순환되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폐관을 앞둔 서울의 오디오 극장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스물아홉 살의 김아야미를 내세워 기억과 꿈, 그리고 비밀스러운 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야미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사건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이지만, 몇 개의 인물과 설정과 세부 사항이 반복되고 변주되는 만남을 그리고 있다. 배수아 특유의 낯설고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어떠한 경계에도 갇히지 않은, 혹은 갇힐 수 없는 존재에 대해 풀어놓는다.

목차

1
2
3
4

꿈, 기록 - 김사과

저자소개

  • 출생 : 1965
  • 데뷔년도 : 1993년
  • 데뷔내용 :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

저자 :
저자 배수아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소설과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0년대 한국소설의 새로운 문법을 개척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으로 2003년 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독학자』로 2004년 제17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인형』, 『심야통신』, 『그 사람의 첫사랑』, 『훌』, 『올빼미의 없음』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철수』, 『붉은 손 ...

책속으로

아야미는 얼어붙었다. 그녀의 두 손이 자신도 모르게 유리문 저편, 남자의 손을 향해서 올라갔다. 그들의 손이 겹쳐졌다. 당황스러운 떨림이 아야미의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녀는 매우 강렬하면서도 정체불명인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는 자신의 육체를 느꼈다. 의지와 의식을 넘어서는 감정.
나는 감정이다, 하고 그녀 안의 무엇인가가 그녀를 대신하여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나는 오직 감정이다.
무슨 일인가요, 하고 아야미는 입술을 움직여서, 하지만 목소리를 입 밖에 내지는 않으면서 말했다.
그때 갑자기 남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리고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난 들어가야 한단 말이야! 왜 날 쫓아내는 거지?” 남자는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았으나 이 순간 눈빛에 갑작스럽고도 기이한 광기가 번득였다. 아야미는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속으로는 어째서 자신이 두터운 유리문 밖, 그다지 크지 않은 남자의 속삭임을 이토록 똑똑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극장의 개관 시간이 지났다고 말했다. 남자가 독순술을 아는 지,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똑똑하게 발음하면서, 이제 끝났어요, 끝났다구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주먹을 들어 마치 유리문을 내려칠 것처럼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여전히 거의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너희를 모두 죽여버리겠어!” / (제1장, 34-35쪽)

부하는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았지만 가끔 그림을 그렸다. 그의 어머니는 화가였다. 아버지는 문화부에서 근무했던 공무원으로, 어머니보다 나이가 열다섯 살이나 많았으며 겉과 속이 모두 고루하고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화제가 궁한 오후, 어머니는 아이였던 그에게 냉소적으로 털어놓곤 했다. “화가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남편이 아니라 스폰서란다.”
몇 번의 이혼 위기가 있긴 했지만 부하의 부모는 그럭저럭 잘 극복하고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부모와 같이 살던 시기에 그는 주로 어머니에게 막연한 연민을 느꼈지만, 지금은 집에서 그 어떤 자기 표현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최소한 애인이라도 갖고 있었기를 바랐다. 굳이 말하자면 아버지는 분명 권위적이었으나, 그의 권위에는 자기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아버지는 독재적이었으나 아무것도 통치하지 못했으며, 그의 독재에도 역시 자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누런 유령처럼 살다가 죽었다. / (제2장, 97-96쪽)

“난 말이죠, 오늘 새벽 공항에서…….” 아야미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공항에서 갑자기 세계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어요. 비일상적으로 환하게 불을 밝힌 공항 입국장 전체가, 입국장의 출입문이, 그 안에서 곧 모습을 나타낼 당신과 함께, 탁 하는 소리도 없이 눈앞에서 스윽 꺼져버렸어요. 마치 사물들이 아니라 내 눈동자가 사라져버린 듯했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어둠의 허공을 더듬었어요. 하지만 눈을 깜빡이면, 어둠 속에 형체들이 있어요. 실체가 아닌 형체들이…… 그들은 때를 놓치고 느리게 달아나는 유령들 같았어요. 사물의 죽음 이후에도 지상에 남아 있게 된 영혼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 어둠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게이트를 통과한 후에, 마치 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똑바로 나를 향해서 걸어왔으니까요.”
“그건 정말이지 우연이었어요. 난 무작정 앞으로 걸었을 뿐이라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마치 나를 향해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처럼, 광장 한가운데 석상의 짙은 그림자 속에 선 사람처럼, 한 손을 들어올렸지요. 그리고 가볍게 주저하면서 나를 향해 천천히 흔들었어요.”
“아야미 그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니까요. 난 단지 앞이 보이지 않아 너무나 답답한 바람에 그냥 어둠을 좀 헤쳐보려고…….”
“그래서 나는 당신이, 바로 당신인 줄…… 알아차렸던 거예요.” / (제3장, 140-141쪽)

몸을 뒤덮을 듯 커다란 외투 차림의 왜소한 늙은 남자가 지팡이를 짚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 그들의 앞을 지나쳐 갔다. 그는 플랫폼의 군중들 중 가장 늙고 가장 추해 보였지만,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형상이었다.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칼은 고약한 쉰 냄새를 풍기면서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번득이는 안경알 뒤편의 피곤한 눈동자를 가진 그는 도축용 도끼 앞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는 늙은 염소 같았다. 부옇게 불투명한 눈동자는 그의 육신의 요소 중에서 가장 많이 늙은 존재였다. 그 눈은 아직도 자신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주저하면서 쉴 새 없이 불규칙적으로 깜박거렸다. 눈꺼풀이 한 번씩 깜박일 때마다 눈동자는 빠른 속도로

출판사서평

소설가 배수아, 등단 20주년 그리고 2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어째서 소설이 시를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반대로 시는 왜 소설을 쓰고자 하는가

어떠한 경계에도 갇히지 않은, 혹은 갇힐 수 없는 존재
“손바닥 바로 아래에 그녀의 움직이지 않는 얼굴이 있었다. 나는 하나의 감정이에요, 하고 말하는 얼굴.”
또한 거기서 우리의 이름은 어떻게 불리고 어떻게 기억되는가
현실과 꿈이 서로를 향해 녹아드는 세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정확히 20년 전, 포스트모던 소설의 새로운 전범을 선보인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으로 1993년 계간 『소설과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배수아는 문단에 등장했다. 20년 동안 보여준 그의 작가적 성취와 쉼 없는 활동은 소설과 에세이, 번역을 아우르는 것이었고 그의 사유와 문장은 동시대 한국, 한국어, 한국인의 경계가 어디까지이며 그것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려는 듯이 한국문학의 문법과 지평을 개척해갔다. 그리고 이제 배수아는 새로운 장편소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올해 우리 앞에 선보인다. 작년 하반기에 계간 『자음과모음』에 연재했던 작품이기도 한 이번 신작은 그가 독일 유학 이후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단편과 장편을 오가며 실험해온 비서사적/반서사적 소설 양식이 미학적으로 완성되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전작 『서울의 낮은 언덕들』에서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인 낭송극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목소리/들’이 소설화되는 과정을 샤머니즘적 색채로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말 그대로 현실이 꿈으로 전이되어 그 안에서 독자적인 구조로 순환되는 세계를 건설했다. 폐관을 앞둔 서울의 유일무이한 오디오 극장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스물아홉 살의 ‘김아야미’를 내세워 그는 기억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그리고 비밀스러운 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야미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 이를테면 암에 걸린 독일어 선생 여니, 극장의 폐관으로 아야미처럼 실업자 신세가 된 극장장, 소설을 쓰러 난생 처음 서울을 방문한 독일인 볼피 간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표면적 중심이지만, 실은 반복되고 변주되는 만남을 통해 오히려 이 소설은 시(詩)와 이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소설이 시를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반대로, 시는 왜 소설을 쓰고자 하는가, 또한 거기서 우리의 이름은 어떻게 불리고 어떻게 기억되는가. 배수아는 특유의 낯설고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어떠한 경계에도 갇히지 않은(혹은 갇힐 수 없는) 존재의 날것을 절창의 솜씨로 그려나간다.

“이제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줘요.”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다른 배수아 소설이 그러하듯 주요한 스토리라인을 요약하려는 시도를 부질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몇 개의 인물과 설정과 세부 사항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변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제목조차 갖지 않고 숫자로만 표시된 4개의 장에 걸쳐서 이야기는 그물처럼 온 사방에 연결되어 있어 책을 펼친 독자가 아름답고 낯선 문장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여니’는 극장장이 아야미에게 소개시켜준 독일어 선생이자, ‘부하’가 약을 배달하는 고객이자, 밤마다 그가 전화를 거는 텔레폰 서비스의 대화 상대이자 한편 아야미가 근무하는 오디오 극장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사덱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낭독자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인 소설가 볼피가 만나기로 예정되었던 여자이자, 반복해서 걸려오는 전화에 아야미가 대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반복되고 변형되는 여니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형식 자체를 묘사하는 것과도 같다. 마치 수수께끼처럼, 그러니까 덤벼들면 풀 수 있는 과제처럼, 그러나 그 모든 시도들이 소설을 읽다보면 무의미해져버리는 것처럼. 즉, 이 소설은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작가가 설정한 도착 지점에 당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 이야기 속에, 다시 말해 작가가 건설한 몽환의 세계 안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한다. 장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무언가 뚜렷한 상황과 전개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내 인물들과 시공간은 꿈의 파편처럼 흩어져 의미와 존재 모두가 사라진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마지막에 남은 것은 “소리의 그림자”,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 “보이지 않는 사람들” 같은 매혹적인 환상이다. 독자가 구체적인 등장인물과 전통적인 기승전결이라는 소설 형식에 대한 강박을 버린다면, 배수아가 만든 몽환의 세계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한국어 문장이 선사할 수 있는 희귀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에 대한 체험이 될 것이다. 배수아의 문학이 앞으로 어디로 향하고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발문 _꿈, 기록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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