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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다 갈라진다

김기택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4년 07월 23일 (종이책 2012년 10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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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일 2014년 07월 23일 (종이책 2012년 10월 10일 출간)
    포맷용량 ePUB(0.46MB, ISBN 978893203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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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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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진 우리의 현실에서 진정한 삶이 희망과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김기택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곱추’가 당선되며 등단한 이후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문학상, 상화시인상, 경희문학상 등을 수상한 저자의 이번 시집은 산업사회의 비인간화 현상과 비인간적 도시의 낯선 혹은 친숙한 풍경들,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인간적 삶의 파탄 등을 치열하고 날카로운 관점으로 그려낸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자연적인 죽음이 아닌 살인이나 자살과 같은 비인간적 폭력의 죽음의 주제들로 이루어진 시편들을 통해 통속적이지 않으면서도 다중을 위로하는 저자의 시만의 강인함을 마주할 수 있다. ‘거품’, ‘목을 조르는 스타킹에게 애원함’, ‘긴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바퀴를 보면 안 굴리고 싶어진다’, ‘혀만 취한 사람’ 등의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애걸하다

꺼져! 어서 꺼지란 말이야!
너는 거의 울 듯이 나에게 소리 지른다
내가 몹시 뜨거웠을 것이다
나에게 된통 데었을 것이다
견딜 수 없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나는 눈 없고 귀 없고 손 없고 발 없고
막무가내로 힘만 좋아서
아무리 조심해도 너에게 옮겨붙는다
희고 보드라운 네 살결은 사납게 터지고 일그러진다
네가 아무리 입에 힘을 모아 바람을 불어도
불꽃 모양으로 내 몸에 퍼진 피는 꺼지지 않는다
타오르는 액체와 이글거리는 붉음은 꺼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너는 내 눈치를 보면서
아주 간절하게 최대한 공손하게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내 불에게 애걸한다
꺼져! 제발 내 앞에서 당장 꺼져버리라구!

목차

시인의 말

우주인 2
거품
넥타이
목을 조르는 스타킹에게 애원함
할여으에어
오늘의 특선 요리
대패삼겹살
울음 2
커다란 나무
손톱
우산을 잃어버리다
구직
모녀
절룩절룩
살갑게 인사하기
공사 중

재활용
두 눈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스키니룩
똥지게 할아버지
개 안에 있는 개
파리
뚱뚱한 여자
오늘의 할 일
긴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고속도로 4
금단 증상
생명보험
모기는 없다
갈라진 몸 꿰매기
나는 바퀴를 보면 안 굴리고 싶어진다
키 큰 여자
여친 어머니 살해사건 ...

저자소개

저자 : 김기택

저자 김기택은 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곱추」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문학상, 상화시인상, 경희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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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눈물은 어떻게 슬픔이 지나가는 복잡한 길을 다 읽어두었다가
슬픔이 터지는 순간 정확하게 흘러내리는 것일까.
저 많은 꽃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봄과 나뭇가지에 마련된 자리에 찾아와 한꺼번에 터지는 것일까. _「우산을 잃어버리다」 부분

여러 번 잘리는 동안
새 일자리 알아보다 셀 수 없이 떨어지는 동안
이력서와 면접과 눈치로 나이를 먹는 동안
얼굴은 굴욕으로 단단해졌으니
〔……〕
일자리에 괴로움을 너무 많이 쓰지는 말게
치욕이야말로 절대로 잘리지 않는 안전한 자리라네 _「구직」 부분

나자마자 개로 굳어져 버린 개
자신이 개임을 결코 의심한 적 없는 것 같은 눈을 가진 개
〔……〕
개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개와
내 안에서 나올 수 없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알아보았다는 것인지 꼬리 치거나 웃으며
막무가내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_「개 안에 있는 개」 부분

가만히 앉아 숨쉬기
〔……〕
그냥 있기만 하기 _「오늘의 할 일」 부분

출판사서평

목적과 수단에서 일탈한 것들을 ‘시’이게 하는 힘
갈라진 틈에 숨은 지상의 원주민들에게 바치는 노래

질문하는 시, 질문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
김기택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가 출간되었다. 김기택은 현실에서 효용이 없어 버려지는 것들, 도시의 리듬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 목적과 수단에서 일탈해 있는 생뚱맞은 것들을 시적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대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떤 감정이입도 없이 그저 열심히 옮겨놓는다. 그러나 그의 시적 진술은 정지된 묘사가 아니라 꿈틀꿈틀 살아 있는 시어들로 진동한다. 원숙미에 짓눌려 차분해지기보다는, 어떤 통찰로 쉽게 재단하기보다는 대상을 포착해 그저 살아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김기택 시가 항상 새로울 수 있는 이유다. 그렇게 포착한 비정형, 비효율, 비경제적인 대상들은 격정적인 울분이나 서정적인 감상에 갇혀 있지 않는다. 죽어 가는, 죽어 있는 세상을 비판하거나 애도하지 않는 단단하고 건조한 응시는 현실 안의 희망과 가능성을 포기한 듯하지만 그것은 해답을 주는 대신 질문만을 지속함으로써 대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제공한다. 어떤 감상적인 자기연민에도 빠지지 않고 우리의 삶과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어법으로 새로운 시적 언어를 탐구하는 김기택의 시적 태도가 돋보인다.
덧붙여, 시집 첫 장에서 시인은 ‘시 쓰는 일 말고는 달리 취미도 재주도 없는 자신의 뛰어난 무능과 활발한 지루함’을 탓하면서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인 자신의 삶의 태도를 고백한다. 시집을 받아든 이들은 이러한 ‘있음’의 방식을 통해 밥벌이의 고단함과 일상의 허무함에 의미를 새기고 가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통속적이지 않으면서도 다중을 위로하는 김기택 시만의 강인함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시인은 다양한 죽음의 사건을 인간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살인의 폭력성을 도덕적으로 비판하거나 희생된 죽음을 애도하는 서술 방법을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한 문체 속에는 분노의 목소리가 감춰져 있지만, 김기택은 오늘날, 거의 일상화된 사건이 되었을 만큼 빈번히 발생하는 비인간적 폭력의 죽음을 객관화함으로써, 우리 삶이 절망적이 되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진 우리의 현실에서 진정한 삶의 희망과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_오생근(문학평론가)

죽음에 맞선 ‘살아 있음’의 공포, 공포를 견디는 ‘시’라는 유희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죽음에 맞선 것이겠지만, 이번 시집을 주관하는 죽음의 기운은 좀더 강력하게 삶을 위협한다. 시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살하거나 살해당하거나 사고로 죽는다.

바닥과 발끝 사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이
사람을 맨 넥타이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_「넥타이」 부분

쪼그라든 차체를 더 납작하게 압축시키며 달리고 있다.
다 짓이겨졌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는 속도가
거의 없어진 차의 형체를 마저 지우며 달리고 있다.
철판 덩어리만 남았는데도
차체가 오그라들며 쥐어짠 검붉은 즙이 뚝뚝 _「고속도로 4」 부분

내리까는 곁눈질 같은, 발음이 다 달리지 않은 중얼거림 같은
여친 어머니의 한마디가
결혼하고 싶어 몸이 단 뇌관을 건드리고 말았던 것.
〔……〕
여친의 빌라에서 벨을 누르고 소리쳤단다.
택배 왔습니다. _「여친 어머니 살해사건」 부분

하지만 그러한 공포 속에서 김기택은 ‘시’라는 유희를 충분히 즐긴다. 발랄한 말놀이와 가능한 모든 감각을 자극하고 깨우는 비유, 그리고 제각각 살아 움직이는 기관과 사물들의 역동이 『갈라진다 갈라진다』 안에 담긴 모든 시들에서 꿈틀대고 있다.

방울방울방울방울방울방울방울
방울에 올라타는 방울
다시 올라타는 방울
〔……〕
방울 방울 방울 방울 방울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방울 _「거품」 부분

시속 111킬로미터로 달리는 치타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탄력만 가려내 담백하게 고았습니다.

발톱과 이빨이 간지러워 우는 고양이의 갓난아기 울음에서 애절한 눈빛만 솎아내 고소하게 볶았습니다.

수천 미터 밖 물살의 힘과 방향을 읽는 물고기 지느러미를 푹 끓여 고감도 감각만을 진하게 우려냈습니다.

두근거리는 토끼의 심장에서 연한 놀람과 어린 두려움을 살아 있는 그래도 발라내 갖은 양념에 무쳤습니다._「오늘의 특선 요리」 부분

모가지들은 아무리 기웃거려도 움직일 생각 없는 창밖을
연신 두리번거린다
꿈쩍도 하지 않는 버스를 움직여보려는 듯
발들이 동동 구른다
땅바닥에 굳게 붙박인 나무와 건물이
계속 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_「금단 증상」 부분

김기택의 시가 주는 이러
?미적 체험은 현실의 고통과 공포를 담는 가운데에서도 시를 읽는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김기택의 시는 재미있다.

■ 시인의 말

죄송하지만 또 시집을 낸다. 시 쓰는 일 말고는
달리 취미도 재주도 할 일도 없는 내 뛰어난
무능력과 활발한 지루함과 앞뒤 못 가리는
성실성 탓이다.


■ 시인의 산문

한 시인이 죽었다. 버스가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받으며 급정거했다고 한다. 앞좌석에 앉아 있던 그의 몸은 의자에서 떠올라 앞 유리를 박고 밖으로 튕겨나갔다고 한다. 사고 버스에서 그는 유일한 사망자였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그는 그 시간에 그 버스를 탔는가. 왜 그 많은 좌석을 두고 앞좌석에 앉았는가. 왜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는가. 왜 그 시간에 아프리카나 인도로 가 있지 않았는가. 왜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는가. 왜 그 튼튼한 앞 유리는 그 시간에 제가 깨질 것을 몰랐는가. 왜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시간에 피를 튀기며 유리창 속에서 나왔는가. 왜 유리창은 꽃이 피거나 출렁거리지 않는가.
그의 죽음은 정확하게 제가 있어야 할 시간과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제가 와야 할 방식으로 찾아온 것뿐인가. 이 특별하고 고유한 죽음은 그의 얼굴에 달린 코와 입처럼 애초에 그의 몸에 달려 있던 것인가. 제 몸, 제 얼굴, 제 이름, 제 죽음을 미리 골라서 태어나지 못한 것은 그의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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