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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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주역에 입문하여 동양문화연구소장 약연 서정기 선생에게 주역을 사사하고 도계 박재완 선생과 노석 유충엽 선생에게 명리(命理)를 공부하면서 주역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활발하게 기고 활동을 해온 맹난자의 역작 『주역에게 길을 묻다』가 연암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수필가로서 이미 여러 권의 수필집과 주역 관련서를 펴낸 바 있는 저자의 이번 책은 기존의 주역 개론서와 차별화하여 동서양 대가들의 삶과 작품에 스며 있는 주역을 톱아본 것이다.
책속으로
‘운명의 신은 이렇게 가혹한가?’ 공자는 운명이 무엇인지를 나이 오십에 깨달았노라, 그리하여 ‘나이 오십에 지천명(知天命)했노라’고 술회했다. 나이 오십이 되어 그는 『주역』을 손에 들고 죽을 때까지 내려놓지 않았다. “나로 하여금 수년을 더 살게 해서 오십에 역(易)을 배우게 한다면 가히 허물이 없을 것이다”(『논어, 술이편』)라고 했던 것이다. 그는 다시 말한다. 명(命)을 모르고서는 군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살고 죽음에는 일정한 명(命)이 있고 부귀(富貴)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 군자는 삶과 죽음, 부귀와 빈천의 결정을 진작부터 알고, 명(命)을 바로 알기에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서 분수를 지킨다고 말했다. 하늘이 정해 놓은 운명을 따른다는 것, 이것이 공자의 ‘낙천지명(樂天知命) 고불우(故不憂)’의 소회이다. 천명을 알고 이에 안도하나니 무슨 근심할 바가 있겠느냐는 심정의 천명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근심하지 않는다는 그의 강렬한 의지의 표현 속에서 ‘고불우(故不憂)’의 연고를, 즉 천명(天命)을 알기 때문이라는, 자기 이해의 변이 왠지 인간적인 연민으로 다가옴을 어쩔 수 없었다. 근심 속에서 근심하지 않는 것, 근심을 해결하지 못한 채, 그 속에서 다만 근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가 고국을 떠난 지 13년 만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고, 외아들 백어마저 그의 앞에서 숨을 거둔다. 손자인 자사(子思)를 데리고 이따금씩 임금의 자문에 응하면서 만년을 오로지 『주역』 연구에만 몰두했다. 이때 주역책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가 생겨났다.-26쪽
사람은 다소 불우해져야 도에 다가서게 되는 것 같다. 여기에는 공자 자신의 심정도 은유적으로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한다. 역(易)을 지은 자란, 즉 역(易)의 성립은 약 5,000년 전 문자가 없던 상고(上古)시대에 복희씨가 황하에서 출현한 용마의 등에 55개의 점을 보고 우주 만물의 생성의 이치를 깨달아 8괘를 그으니 시획(始劃) 8괘로써 그는 역의 조종(祖宗)이 되었다. 두 번째는 주나라 문왕이 ‘복희의 역’을 연구하여 64괘에 괘사를 붙이니 문자로 된 역(易)이 시작되었으며, 문왕의 셋째 아들인 주공(周公)이 부왕의 역을 계승하여 각 괘의 효(384효)에 효사를 붙였다. 문왕의 괘사와 주공의 효사를 합하여 ‘주역경문(周易經文)’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자의 해설이 없었다면 『주역』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29쪽
노자는 도에 이르른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하였으며, 현덕을 갖춘 그 성인은 자신의 총명을 나타내지 않고, 그 빛을 안으로 싸서 부드럽게 하며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의 티끌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화광동진(和光同塵)’하고, 겉으로는 허름한 베옷을 입고 안으로는 옥[玄德]을 품듯이 하며 내면은 무위(無爲) 무사(無事)를 행하며 도와 합치된다는 것이다. 노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41쪽
성리학의 사상적 구조나 논리의 뼈대는 처음에는 허약했다. 이런 유교가 만약 노장이나 불교를 들여와 새로운 이해의 틀을 짜지 않았다면 아마 주자학은 탄생하기 어려웠을는지도 모른다. 동진(東晋) 이후 불교에서는 반야를 설명함에 도(道)의 본체를 이(理)로 보고 당대(唐代)의 화엄학에서는 이사무애(理事無碍) 또는 이법계(理法界) 등의 논리와 분석을 통해 진여(眞如)를 이(理)로 해석했다. 주자는 불교에서 이(理)와 체용(體用)의 개념을 도입했다. 불교는 또한 도교에서 무(無), 현(玄) 등의 용어를 차입해 공(空)에 대입시켰다. 주자는 한때 대혜종고 선사 밑에서 선(禪) 수행을 한 적도 있었으며 그가 지은 『참동계고이(參同契考異)』도 도교에 대한 관심을 증명한 책이었다. 그의 노장과 불교는 성리학의 바탕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도(道)는 ‘이(理)’로 번역되었다.-77쪽
주자는 본디 『역경』을 ‘점치는 책(易本卜筮之書)’으로 규정했다. 그는 『주역』의 성립 과정에 대해 복희(伏羲)가 괘(卦)를 그리고 문왕(文王)이 괘풀이(卦辭)를 지었으며, 주공(周公)이 효풀이 글(爻辭)을 쓰고 공자(孔子)가 십익을 지었다는 전통적인 해석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에 따르면 복희 당시에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괘와 효를 그려서 천하의 사물을 개통시키고 그 사물들의 직무를 이루게 하였으며, 문왕이 괘 전체의 모습을 보고 괘풀이 글을 짓고 주공이 괘효의 변화를 보고 효풀이 글을 써 길흉의 모습이 더욱 분명해졌으며 문왕과 주공의 괘효(卦爻) 풀이 글은 다만 점치기 위해 쓴 것이나,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의리(義理)로 역(易)을 말하게 되었다고 『주자어록(朱子語錄)』에서 밝히고 있다.-83쪽
토정은 『대인설』에서 말한다. “신령스러움은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신령스러움
출판사서평
1990년 주역에 입문하여 동양문화연구소장 약연 서정기 선생에게 주역을 사사하고 도계 박재완 선생과 노석 유충엽 선생에게 명리(命理)를 공부하면서 주역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활발하게 기고 활동을 해온 맹난자의 역작 『주역에게 길을 묻다』가 연암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수필가로서 이미 여러 권의 수필집과 주역 관련서를 펴낸 바 있는 저자의 이번 책은 기존의 주역 개론서와 차별화하여 동서양 대가들의 삶과 작품에 스며 있는 주역을 톱아본 것이다.
공자, 노자, 주자, 소동파, 백거이, 이지함, 서경덕, 조식, 이황, 바쇼,
라이프니츠, 카를 융, 헤르만 헤세, 괴테, 예이츠, 옥타비오 파스, 보르헤스…
일찍이 주역을 통해 신묘한 세계를 연 동서양 대가들의 ‘인물로 읽는 주역’ 이야기
『주역』이 점서(占書)임에도 불구하고 경전으로 대접받는 까닭은 닥쳐올 미래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의 행동 규범을 제시하고 의리서(義理書)로서 윤리적 지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을 강조하는 이 땅의 선비나 유학자들뿐만 아니라 인문학에 종사하는 철학자나 교수들도 『주역』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동양의 작가 바쇼나 소동파, 백거이는 물론 유럽의 작가 헤세나 괴테, 예이츠, 그리고 옥타비오 파스와 보르헤스도 『주역』을 애독했다. 보르헤스는 스페인어판 『주역』에 헌시를 쓰고 유럽 독자들에게 『주역』 읽기를 권했다. 헤르만 헤세는 『유리알 유희』에서 주역의 인문학적 정신과 『주역』의 산수몽괘와 화산여괘 그리고 화풍정괘를 차용해 작품의 근간으로 삼았다. 시인이란 “언어가 원래 말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를 통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의 경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던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와 의식과 무의식의 불합치에서 일어나는 정신분열을 통합하기 위해 무의식 안의 모든 내용을 의식화시킬 것을 강조한 카를 융 역시 『주역』을 주목했다.
이 책에는 특히 저자가 직접 관련 인물들의 유적을 찾아 취재한 자료와 사진이 다수 곁들여져 독자들의 흥미를 더해 준다.
■ 추천사
“모름지기 주역의 세계는 천계(天界)와 신계(神界), 인계(人界)와 물계(物界)를 모두 하나로 아울러 천연의 도덕과 본연의 윤리와 당면의 예절을 밝히기 때문에 털끝만큼이라도 길이 어그러지면 아득히 혼돈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까닭에 예로부터 주역을 배움에는 반드시 도통(道統)의 연원(淵源)을 찾아서 입문(入門)하였던 것이다. 관여(觀如) 맹난자(孟蘭子) 사문(斯文)이 주역으로 들어가는 문을 뚜렷이 밝히고, 그 이정표를 세우기 위하여 동서고금의 위대한 역설(易說)을 널리 탐구하면서 발로 그 유적을 답사하고, 손으로 그 역사를 실측하여 몸소 형체도 색깔도 없는 진리의 빛을 보고, 소리도 냄새도 없는 영혼의 말씀을 들어 별천지의 희소식을 책으로 엮었으니 참으로 새 시대, 세계 속의 한국 역학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역작이다.”
-약연 서정기,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