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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권여선 소설

권여선 지음| 자음과모음 |2014년 12월 02일 (종이책 2014년 11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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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일 2014년 12월 02일 (종이책 2014년 11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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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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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권여선의 날선 문제의식이 담긴 첫번째 소설집『처녀치마』. 작가는 이미 작품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 ‘연애(戀愛)’라는 헌사를 붙인 바 있다. 연애가 비로소 연애인 것은 작가의 말처럼 “사랑이란 말처럼 상대방 면전에서 남발되거나 소모될 수 없는” 그만의 정체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처녀치마』는 그동안 한국 문단에서 보여준 작가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사이를 끊임없이 이어진 것으로 독해하는 『레가토』, 시간 속에서 한없이 미끄러지는 기억과 망각에 관해 이야기하는 『비자나무 숲』은, 『처녀치마』라는 ‘운명’ 속에서 잉태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권여선의 인물들은 모두 하나의 운명공동체처럼 엮여 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각각의 메시지를 ‘따로-같이’ 전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처녀치마
트라우마
12월 31일
두리번거린다
수업 시대
불멸
나쁜음자리표
그것은 아니다

해설 스토아주의자의 치유법_이수형

저자소개

권여선

저자 : 권여선

저자 권여선은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 『레가토』가 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책속으로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의 세계』에 보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동물이 나와요.”
보르헤스는 과연 당신에게 시를 쓰고 싶게 만드느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눈물에서 아주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네요. 그놈의 향기 때문에 녀석은 사냥꾼에게 쉽게 잡히는데, 잡히고 나면 죄다 눈물로 변해버린답니다. 아무것도 안 남고 향기로운 눈물만 남는대요. 선혜 씨도 그래요. 이 여자 정말 아무것도 안 남고 그냥 눈물이 되는 거 아닐까 생각했어요. 아까.”(「수업 시대」, 193쪽)

나는 눈을 감고 누군가 빠져나간 자리를 고스란히 보존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문화 유적을 보존하는 일처럼 T가 떠난 자리를 지키는 일도 어떤 쓸모가 있을 것이다. 모든 보존에는 일면 자아도취적인 데가 있다. 모든 파괴에 자기파괴적인 면이 있듯이. 사실 우리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기와 관련된다. 그래서 타인을 가장 잘 모욕하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가장 민감한 사람일 수 있다.(「나쁜음자리표」, 235쪽)

그럼 어떤 연기 해보고 싶어? 남자가 물었다. 여자는 글쎄요, 했다. 실연? 하고 물으며 남자가 또 히죽 웃었다. 감독님, 그렇게 웃지 마세요. 그렇게 웃는 거 너무 안 어울려요. 나 배우 아니잖아. 감독이란 자는 여전히 어색하게 히죽거리며 말했다. 실연도 사형이에요. 너 이제 그만 죽어, 그러는 거죠. 남자가 갑자기 손가락을 딱 튕기더니 뭔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여자의 목소리는 천변만화하지는 않아도 사람을 야릇하게 도취시키는 힘이 있었다. 너 이제 그만 죽어, 그런 무서운 말을 여자는 태연히도 내뱉었다.(「그것은 아니다」, 296쪽)

출판사서평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권여선의
날선 문제의식이 담긴 첫번째 소설집

“누구나처럼 내게도 꿈에서만
알아볼 수 있는 길이 있다.”

제2회 상상문학상 수상작인 『푸르른 틈새』로 등단한 작가 권여선의 첫번째 소설집이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등단 후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낸 첫 소설집인 만큼 이 책은 삶에 대한 농도 깊은 시선과 첨예한 작가정신이 집적된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상상문학상 심사평에서 언급된, ‘최고 수준의 문장력’, ‘놀라운 흡인력’, ‘인공이 배제된 자연스러운 울림’ 등의 표현을 첫 소설집인 『처녀치마』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심화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출발점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작가는 이미 작품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 ‘연애(戀愛)’라는 헌사를 붙인 바 있다. 연애가 비로소 연애인 것은 작가의 말처럼 “사랑이란 말처럼 상대방 면전에서 남발되거나 소모될 수 없는” 그만의 정체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처녀치마』는 그동안 한국 문단에서 보여준 작가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사이를 끊임없이 이어진 것으로 독해하는 『레가토』, 시간 속에서 한없이 미끄러지는 기억과 망각에 관해 이야기하는 『비자나무 숲』은, 『처녀치마』라는 ‘운명’ 속에서 잉태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권여선의 인물들은 모두 하나의 운명공동체처럼 엮여 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각각의 메시지를 ‘따로-같이’ 전하고 있다.

?책의 내용과 구성

너와 나의 임포텐스,
우리 앞에 놓인 은유(들)

각각의 단편이 가진 정체성과 매력은 남다르다. 「트라우마」는 왜곡된 채로 반복-상연되고 있는 과거로부터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한때 주인공 尹과 함께 사회에 저항하던 그의 ‘동지’들은 이제 가장 지질한 형태의 저항만을 답습하고, 그런 저항의 목표 지점은 ‘우―토피아’(라는 게이바)로 상징되는 ‘이곳에는 없는’ 야릇한 상상의 장소일 뿐이다. 「그것은 아니다」가 보여주는 것 또한 문화/정치운동에 투신한 인물이 어떻게 고시원 속에 틀어박혀 죽은 과거(의 연인)를 그리워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난폭한 서사다.

일찍이 그렇게 배웠다.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한두 번의 연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만물은 유전한다고, 모든 것은 흔적 없이 움직이다 사라질 뿐이라고. 그녀는 규와 그에게 시선을 못 느끼면 배우로서 임포라고 가르쳤다. 역사의 시선을 외면하면 역적이라 가르쳤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만의 시간들을 살고 있다. 그들도 유전한 것이다. 그녀를 되살릴 수 있다 해도 그는 단 일 초의 졸음도 참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 손을 털고 훌훌 떠난 그녀도 마찬가지. 그건 그들이 저 지독한 호텔방에서 학습한 것. 무너지면서 배운 것은 절대 잊지 못한다. 그들이 공유하는 배움은 거기까지. 거기까지.(299쪽)

그리고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연극의 형태(이자 “역사의 시선”이라는 유물론적 테제)로 나타나는 현실의 재생산이다. 그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언제나 타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역적”이 되어 떠돌고, “무너지면서 배운 것”에 관한 잔인하리만치 적확한 체험은 사실로 탈바꿈한다. 작가의 이 같은 세계인식은 결국 나와 네가 어떤 식으로든 ‘불능’한 상태, 즉 누구나 성적-사회적 임포텐스를 경험하게 되는 지금-여기의 절망적 상태를 대변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로부터) 해체되고 지연되어 우리 앞에 놓인, 이 사회의 부분이자 개체일 뿐인 자신을 바라보는 일과 겹쳐진다. 이처럼 우리가 사회 속에 ‘기입된’ 자신을 일종의 수사, 즉 사회적 경험인 동시에 반사회적 체험(“자기밖에 모르는 자기만의 시간들”)인 일종의 은유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다시 ‘해석해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이 은유의 법칙은 어디서부터 탄생하게 된 것인가? 바로 이러한 물음들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회귀의 제스처는, 과거의 ‘(대중)운동’이 내재했던 실패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예언에서 운명으로,
몰락하는 자에게는 날개가 있다

하지만 “부자였던 사람은 죽어서도 부자로 살고 금욕주의자는 죽어서도 쾌락을 모른다”는 이야기(「처녀치마」, 50쪽)는, 이러한 제스처를 좌절시키는 하나의 예언으로 작용한다. 이 예언은 「12월 31일」에서 마흔이 되는 주인공이 옛 연인을 회상하며, “녹꽃은 더디게 피니, 그곳은 아주 오래전에 다친 곳이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139쪽)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운명으로 탈바꿈한다. 「나쁜음자리표」의 ‘나’ 역시 갑자기 사라져버린 동성 연인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지만
이 역시 “나쁜 패”를 연달아 선택하게 되는, 항상 몰락하는 운명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만다.

T. 어쩌면 Y일지도 모르는 S.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네가 누구에게 무슨 돈을 꾸어준단 말이냐. 집도 절도 없이 옷박스를 무슨 동동, 무슨 동동 고려가요의 후렴구처럼 쌓아놓고 살던 네가, 음반기획사니 케이블 TV니 인터넷 사이트니, 한 음절도 틀리지 않는 거짓말만 되풀이하고 다니는 네가. 그러나 그 정도는 안 된다. 좋은 패가 연달아 둘이 아닐진대, 두 패가 모조리 나빠야 답이 좋게 나오는 삶의 역설을 기억해라. 너는 아직 젊고 나는 너의 불운을 믿지 못하겠다.(267쪽)

그렇지만 여전히, 이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니체)이야말로, 역설적인 의미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들은 아닐까. 삐뚤어진 사회를 삐딱하게 살아가는 것이 기실 ‘윤리적인’ 태도이듯, ‘운명=몰락’의 구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삶의 태도는 ‘알지만 그렇게 하는’ 몰락의 방법론을 전략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동시에 이 몰락을 거치는 일은 결국 ‘네 안의, 너 이상의 것을’(라캉)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몰락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이 발견을, 이카루스의 그것과 대치시켜서는 안 된다. 태양 속으로 한 걸음, 이 비행(非行/飛行)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를, 작가 권여선은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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