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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 독서에세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페미니즘적 책 읽기'
대부분의 여성은 어릴 적 한 번쯤은 동화 속 주인공을 꿈꾸어봤을 것이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콩쥐팥쥐》에서 여자 주인공은 어떻게 해피엔딩을 맞이했는가. 왕자님이 올 때까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누워 있거나, 구멍 뚫린 독에 물을 붓거나 하는 등 극강의 인내심을 보여준다. 동화 속 여자 주인공은 항상 인내의 제왕이다. 많은 작품들 속에서 여성은 투덜거리기보다 인내하는 쪽을 선택한다. 남성의 폭력에, 바람기에, 거짓말에, 불법행위에 그저 인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어릴 적 그다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소설 속 여성의 모습은, 어른이 되고 보니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여성 문제들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읽어내면, 앞으로의 문학 작품에서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진부한 여성 캐릭터는 사라지지 않을까? 《씨네21》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를 연재 중인 북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 이다혜가 이번엔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페미니즘적 책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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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이다혜는 에세이스트. 북 칼럼니스트. 《씨네21》 기자로 일하며, 라디오와 팟캐스트에서 책과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주 좁은 틀 안에서 아무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며 살아가는 일에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을 깨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항으로서의 책 읽기조차 나를 착실하게 세상살이에 길들여오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읽기를 즐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책속으로
내가 읽은 것과 경험한 것, 배운 것, 느낀 것 사이에는 늘 이해할 수 없는 틈이 있었다. 아무도 그 차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여자인 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 p. 12
여성으로서 이 장르의 팬이 된다는 것은 시련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운명을 함께할 여성 캐릭터를 찾는 것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 한국 언론 기사를 읽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신원 미상의 시체 또는 언제 죽거나 구출될지 알 수 없는 감금된 여자 대신, 그저 남성 캐릭터의 연인이나 아내 역할에 감정이입을 해도 죽기는 매한가지다. 여성이 탐정(형사)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경우는 다를까? 그녀에게 다행히 죽음은 찾아오지 않더라도 납치되거나 강간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매력적인 연인이 알고 보니 범인이거나 범인의 사주를 받은 인물이라는 설정도 드물지 않다. - p. 29
떠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있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 거주하는 여성을 남성 작가들이 그릴 때, 남자 주인공의 눈에 비친, 떠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의 모습에서 내가 느끼는 거북한 감정은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이 그 안에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도시가 아닌 곳, 선진국이 아닌 곳의 여자들, 억압받는 여자들이 갖는 애처롭고 청승맞은 소망. 누군가(남자)의 호의에 기대지 않고는 벌어질 수 없는 탈출의 소망.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다가 가슴이 답답해진 것은 그 안에 등장하는 하인숙이라는 여성 때문이었다. - p. 45
여자가 주인공이면서 사건을 지배하는 악당 캐릭터인 픽션을 보기 드문 나머지, 나는 여기에서조차 나랑 같은 성별인 사람이 저렇게 굴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여자인 내가 『나를 찾아서』를 즐겼다고 해서 에이미의 행동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남자인 시청자가 <덱스터>를 즐겼다고 해서 덱스터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듯이. 여성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여성은 있을 수 없다. - p. 60
제가 처음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비혼 사십 대 여성 선배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와 제 주변인들은 서로의 역할 모델이 되어주면서 이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이 나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 세대의 동성 역할 모델을 찾고 영감을 얻는 일도 멋지지만, 저는 여러분이 서로의 역할 모델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함께 더,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 p. 86
그때가 1990년대 중반이었는데도 이미 아버지의 인맥으로 IT 회사에서 여름방학 인턴십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아니면 부모님이 계시는 북미나 남미, 유럽의 어딘가에서 방학을 보내는 친구들도 많았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는 없었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하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대체로 ‘그런 사람’이 당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당신들 중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 p. 113~114
성급한 일반화 하나. 인간은 다들 그냥 부모님과 다른 것을 원하는 게 전부인 시기를 겪는 것 같다. 진보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진보적인 언행을 우스워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보수적인 언행을 혐오하고 뭐 그런 일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부모와 닮아간다지. 그 결과 우리는 이런(!) 인간이 되는데도, 부모님은 좋은 것만 해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살았다. - p. 130~131
출판사서평
여자니까,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아버렸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여자 독서 클럽’
《씨네21》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를 연재 중인 북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 이다혜 기자.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과 EBS 라디오 〈책으로 행복한 12시〉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누비며 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책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읽기를 즐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이다혜 기자는,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페미니즘적 책 읽기를 권한다.
고전이라 불리며 세대를 초월하여 널리 읽히고 있는 소설 속 여성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어릴 적 그다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소설 속 여성의 모습은, 어른이 되고 보니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여성 문제들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여성의 운명은 남성에 의해 좌우되고, 여성은 그러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남성의 사랑만을 갈구한다. 물론 문학 작품에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 분위기가 반영될 수밖에 없고,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있다고 해서 작품 전체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읽어낼 때, 앞으로의 문학 작품에서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진부한 여성 캐릭터는 사라지지 않을까? 나아가 여성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미스터리와 스릴러에서는
왜 항상 형사가 아니라 그의 아내가 죽을까?
“왜 범인은 탐정(형사)이 아닌 그의 애인을 죽였을까? 그런 상황 전개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가장 큰 의혹은…… 혹시 남성 탐정(형사)의 각성을 위해, 혹은 더 큰 사건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로 그녀들이 희생되고 있지는 않은가? 탐정(형사)을 해치는 것보다 그의 연인 혹은 배우자를 해치는 것이야말로 ‘결정적 한 방’으로 효과적이라면 여성이 탐정 역인 경우에도, 그들의 배우자나 연인에게 같은 끔찍한 살해 행위가 가해지는가? 특히, 강간이라는 범죄는 탐정(형사)과 그의 배우자 중 어느 쪽에 가해질까?”
에드거 앨런 포와 아서 코난 도일, 애거사 크리스티 등이 쓴 클래식 미스터리는 누군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살인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는 게 살인범을 찾는 추리의 첫 단계였다. 20세기 초중반 살인의 이유란 돈, 명예 또는 사랑이었고 그 시대 돈과 명예는 대부분 남성이 가지고 있었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주로 남성이었다.
하지만 최근 스릴러에는 살인의 동기가 없다. 묻지 마 살인의 시대.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연쇄살인을 어떻게 멈추게 할지가 중요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애꿎은 여성은 항상 피해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CSI〉, 〈크리미널 마인드〉, 〈멘탈리스트〉 등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범죄수사물에서도 탐정이나 형사인 남성이 아니라 그의 아내 또는 여자 친구인 여성이 범죄의 희생양이 된다.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여자면 꼭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저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같은 정치적 의견(당연히 여성 문제를 포함한다)을 과격하게 표현하던 사람이 혐오 발언이나 문제 있는 언행을 하는 경우, 또 묻는 사람들이 있다.
저런 여자들 문제 있지 않아?
응, 당연히 문제 있다고 생각해. 저 사람이 한 행동은 문제 있다고 생각해.”
여자의 적은 여자라서 저희들끼리 싸우느라 진전이 없다고 한다. 지구인의 절반은 여자니 여자의 적이 남자인 경우도 있지만 여자인 경우도 있는 게 당연하다. 사실 남자들끼리 다투는 경우가 더 많은데, 유독 여자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자=같은 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길리언 플린이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나를 찾아줘〉의 여성 주인공 에이미. 그녀의 남편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운 데다가, 직업을 잃어 그동안 안락한 삶을 누려왔던 맨해튼을 떠나게 만든 죄인이다. 하지만 그동안 그림 같던 부부의 삶이 가식이었음을 폭로한 에이미의 일기는 거짓이었다. 그러면 억울한 것은 남편이다. 에이미는 유산한 것처럼 꾸미고 강간당한 것처럼 꾸민다. 여성성을 십분 활용해 남자들을 휘두른다. 심지어 남자들이 하는 방식으로 여자들을 비판하고 욕한다. 그렇다고 에이미가 여성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에이미는 스릴러물의 한 캐릭터일 뿐이다. 〈덱스터〉를 즐기는 남성 시청자가 덱스터의 행동을 옹호하지는 않는 것처럼.
『제인 에어』는 된장녀의 신분 상승기?
아니면, 개념녀의 제 무덤 파기?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된장녀의 신분 상승기’일까, ‘개념녀의 제 무덤 파기’일까? 험난한 유년기를 보낸 제인은 손필드 저택의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저택 주인 로체스터와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로체스터의 미치광이 아내 버사의 존재를 알게 되어 그의 곁을 떠난다. 그 후 저택에 불이 나 버사는 죽고 로체스터는 눈과 한쪽 팔을 잃게 된다. 환상 속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고 저택으로 달려온 제인은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 로체스터와 결혼한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했지만 결국 멀리 떠나는 대신 로체스터의 곁을 머물기로 한 제인 에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로체스터의 아내 버사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서인도제도의 부유하고 아름다웠던 버사는 왜 영국으로 시집와서 미치광이 여자가 되었을까?
대부분의 여성은 어릴 적 한 번쯤은 동화 속 주인공을 꿈꾸어봤을 것이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콩쥐팥쥐』에서 여자 주인공은 어떻게 해피엔딩을 맞이했는가. 왕자님이 올 때까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누워 있거나, 구멍 뚫린 독에 물을 붓거나 하는 등 극강의 인내심을 보여준다. 동화 속 여자 주인공은 항상 인내의 제왕이다. 많은 작품들 속에서 여성은 투덜거리기보다 인내하는 쪽을 선택한다. 남성의 폭력에, 바람기에, 거짓말에, 불법행위에 그저 인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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