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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 온 뒤를 걷는다

눅눅한 마음을 대하는 정신과 의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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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근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2020년 05월 08일 (종이책 2020년 04월 2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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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일 2020년 05월 08일 (종이책 2020년 04월 21일 출간)
    포맷용량 ePUB(22.18MB, ISBN 9788925588223)
    • 주요 일간지 북섹션 추천도서 > 2020년 4월 주요일간지 소개도서 > 2020년 4월 주요일간지 소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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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이 책의 주제어

# 교양심리 # 만성조현병 # 병증 # 트라우마 # 심리상담 # 정신병원 # 환자 # 일상


“태풍이 상륙하여 폭우가 몰아치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오로지 그 순간만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사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비 올 때’가 아닌 ‘비 온 뒤’의 시간임을.” _본문 중에서

폭풍우가 쏟아지는 시간, 그 고통의 순간을 우리는 영원처럼 느끼기 쉽다. 하지만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우리는 비를 맞아 눅눅해진 땅 위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간다. 작가는 도시 외곽의 정신병원 의사로,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 만성 조현병 환자를 돌본다. 그는 환자들이 어제보다는 나아지기를, 조금 더 버텨주기를 기대하며 지난한 치료 과정을 함께한다.

작가는 비바람이 지난 뒤에도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우리 삶과, 만성 조현병 환자들의 삶이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한다. 완전한 치유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기 힘든 현실에서도 우리는 비 온 뒤 질척이는 길을 그저 꿋꿋하게 걸어가야 한다. 우울과 피로로 흠뻑 젖은 일상에서 가늘게 빛나는 희망 한 줄기를 발견하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고통 그다음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상세이미지

우리는 비 온 뒤를 걷는다 도서 상세이미지

목차

프롤로그
: 사람으로 세상을 보는 일

1장 나는 그저 가만히 듣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중국집 전단지의 속사정
둘째 작은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야?
이야기할 시간, 울어볼 기회
병무청은 내게 산재를 줬어
변치 않는 맛으로 일하기란
급할수록 버스에 두고 내리자
듣는 마음을 미루어 짐작건대
캐비닛은 대나무숲
자고로 전통은 도제식
나의 살던 의국은
다 큰 어른의 분노 발작
한국형 프로이트는 굉장히 바빠
북적이는 방의사의 작은 방
단 하나의 이유가 맞지 않는 이유
감...

저자소개

저자 : 이효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정신병원에서 만성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을 진료하고 있다. 정신과의 일이란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람과 질병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안타까운 순간과 아쉬운 마음을 기록한다.

책속으로

치매나 조현병 같은 만성질환을 앓는다는 것 그리고 그런 환자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끝날 기약이 없는 장기전에 동원된 병사의 삶과 닮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들 중 더러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또 많은 가족과 환자는 서운하더라도, 다들 제 갈 길 따라가기 마련이라며 그 시간들을 버텨낸다. 그래도 누군가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내심 바라며. _p24,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정신과 밥을 먹은 지도 얼추 20년. 이제는 나도 경청이나 공감, 해석 같은 것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이뤄져야지 의미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환자의 감정이 격동한다고 해서 꼭 치료적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란 것도, 더군다나 그것이 내 능력과는 별 연관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 이 직업의 가장 기본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흔히 결핍되어 있는 것이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야기를 하며 울어볼 기회 한 번이 없었던 사람들이, 참 많은 세상이라는 것도. _p44, 이야기할 시간, 울어볼 기회

소수자에 대한 다른 표현과는 달리, 사용하면서 거의 아무런 감수성의 저해도 받지 않는 ‘미쳤다’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갑자기 내 차 앞을 끼어드는 운전자에게,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는 상사에게, 나를 버리고 떠난 전 애인에게 우리는 너무 쉽게 ‘미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 말은 누군가에겐 배냇병신, 귀머거리, 앉은뱅이, 곰배팔이, 사팔뜨기, 애꾸, 벙어리, 청맹과니, 문둥이, 언청이, 곰보 같은 말처럼 너무 당연하게도 상처가 된다. _p71, 듣는 마음을 미루어 짐작건대

환청이니 세계의 지도자니 하는 우리 눈에 낯설어 보이는 기이한 것들을 제외한다면, 조현병에 걸리지 않은 우리 삶이 그녀와 그렇게 많이 다를까 싶다. 젊어서 우리는 자신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믿고, 자기는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믿고, 그런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절망하며 젊은 날을 보낸다. 그리고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점차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중년의 호르몬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 날이 오기도 하고, 점차 둔해지는 정서를 통해 예전 같으면 기쁘고 슬펐을 모든 자극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_p130, 우리는 모두 그럴 거라고 믿었지

자신과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고 쉽게 분노할 수 있었고, 또 그 분노를 쉽게 용인받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온 것이 우리 윗세대다. 이남에서는 ‘빨갱이를 몰아내자’라는 구호로, 이북에서는 ‘미제의 각을 뜨자’라는 구호로. 하지만 그 시절을 그렇게 분노로 살아오지 않았던 사람들 또한 우리 곁에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들이 있어서 어쩌면 우리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그 참화를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생긴 분노는 때로는 살풀이처럼 풀어야 하지만, 때로는 승화시킬 필요도 있다. 그 승화의 방어기제를, 정신과 교과서에서는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_p253, 성숙한 사람은 화를 익힌다

출판사서평

“우리는 끊임없이 걸어야 한다.
매우 비효율적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만성 조현병 환자를 돌보는, 정신과 의사의 모든 요일들

정신과 의사는 오로지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마음을 나누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만성 조현병 환자는 치명적인 아픔을 겪고 난 뒤 마음을 닫은 채 병증과 부단히 싸우는 사람들이다.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들의 병을 살피고 고쳐나가는 정신과 의사의 일이, 자칫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그 진창길을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한다.

조현병을 앓는 엄마 때문에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병원을 처음 찾았던 아이.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외할머니를 대신해 엄마의 보호자가 된다. 자신을 낳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 손에서 자라다 시설에 맡겨진 지적장애 환자. 집에 가고 싶은 이유를 묻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집에는 우리 아빠가 있으니까요.”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년의 남성. 정해진 포맷에 따른 질문에 대답하다 느닷없이 눈물을 터뜨린다. “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정신과 의사는 터뜨려 보지 못한 눈물,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보고, 듣는 사람이 된다. 작가는 때로는 뭉클하고 때로는 울컥하며, 또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환자와 보낸 순간들을 정제된 단어와 문장으로 기록한다.
하늘의 계시를 듣는 환청과 과대망상 속에서 도탄에 빠진 인류를 구하는 세계 지도자가 된 환자.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 들끓는 분노를 격하게 표출하던 그의 양성증상은 긴 세월 속에 점차 자극에 둔감해지는 음성증상으로 변해간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대로 하면 참 좋은데, 들어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다며 덤덤하게 말하는 그. 작가는 그 모습이, 환청이니 망상, 자해 같은 극단적인 모습만 제외하면 점차 나이를 먹으며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감 넘치던 결기를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수 단체 집회에 가스총을 들고나오고,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여성 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토해내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노인들. 작가는 그것이 혹 그들의 뇌리에 총성이 빗발치던 전쟁이 집단 트라우마로 기생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작가는 이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과 환자의 병증을 나란히 두고 살핀다. 어쩌면 정신질환을 고치는 일이, 병처럼 만성화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어줄지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1장 ‘나는 그저 가만히 듣습니다’에서 작가는 의사로 살며 겪고 들은 에피소드들을 풀어놓는다. 2장 ‘가늘게 반짝이는 순간’에서는 진창길 같은 현실에서 빛을 발하는 작은 희망을 속삭인다. 3장 ‘구김진 날들을 다리며’에서는 지난 과거의 얼룩들을 지워가는 과정을 살핀다. 이처럼 책은 일상의 후미진 구석들을 살피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간다. 젖은 마음을 말리는 따뜻한 글들이, 궂은 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이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물론 책이 이야기하는 ‘비 온 뒤’의 길은 희망찬 미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대하는 마음, 최악의 상황을 묵묵히 수습해가는 과정에도 희망은 작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먹구름이 뒤덮인 하늘에도 구름의 가장자리를 유심히 살피면, 가려진 해가 가늘게 반짝이고 있다. 질척이는 일상에 발을 딛고 묵묵히 걷는 당신에게, 이 책은 한 줄기 빛나는 햇빛(silverlining)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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