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2007). 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Insurance Truth). 웅진윙스.
실용>자기개발>투자, 재테크>보험>보험회사가 감추는 사악(邪惡)한 진실>한국어>한국
통독 했음.
이 글을 쓴 김미숙은 보험모집인(보험설계사=생활설계사=재무설계사) 출신으로 보험가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보험회사와 금융감독원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김미숙은 보험소비자협회(http://cafe.daum.net/bosohub)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1년 동안, 한국 사람들이 민간 보험회사(우체국, 농협, 새마을 금고, 축협, 수협 제외)에 납입한 보험료는 총 96조 411억 원이고, 국민 1인당 보험 납입료는 196만원이었다. 한편, 국민건강보험에 납입한 보험료는 총 약 10조 원이고, 1인당 보험 납입료는 약 20만원 정도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는 검사, 입원, 수술할 때, 약을 먹을 때 진료비와 약제비 등에 대해서 무조건 일정비율을 지급한다. 하지만, 민간 보험회사에서는 입원 치료비 중에 고작 일부만을 지급한다.
김미숙이 이 책에서 쓴 내용을 보면, 4대 공적보험인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필수 민간보험인 자동차 보험에만 가입하고, 그 밖에 다른 모든 보험에는 가입을 하지 않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개인에게 유리하다. 즉, 김미숙은 공적보험 외의 민간 보험은 법률적으로 필수적인 보험에만 가입하라고 말하고 있다.
김미숙은 이 책에서 민간보험회사의 악랄(惡辣)함을 파헤친 후(김미숙은 <생명보험회사>를 <생명우롱회사>로, <손해보험회사>를 <손해가중(損害加重)회사>로 부른다)에, 책 뒷부분에서 건강보험을 예찬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김미숙의 의견에 동의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시장에서 돈을 버는 기업조직에 대해서 환멸(幻滅)감을 느꼈다. 또, 국민에게 돈을 걷는 정부조직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호감(好感)을 느꼈다. 정부조직은 기업조직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나쁜 조직 같다. 정부조직이 아니면, 사악(邪惡)한 기업조직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나의 느낌이 반기업(反企業) 정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원인은 보험회사들이 제공한 것이다.
금융기업은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보험회사가 가장 흉악(凶惡)한 조직이다. 은행이나 증권회사는 몸과 마음이 멀쩡한 사람들과 돈을 가지고 사투(死鬪)를 벌이는데, 보험회사는 질병이나 사고로 신체적,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과 돈을 가지고 사투(死鬪)를 벌인다.
237쪽에 보면, 우리나라에서 보험가입자들과 보험금 관련 소송을 가장 많이 벌이고 있는 <D 보험회사(Devil Insurance Company가 생각나게 하는 이니셜임)>가 나오는데, 어떤 보험회사를 가리키는 것일까? 궁금하다.
p. 237에서 인용했음.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는 보험사별 소송현황이 나와 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2006년 4월 1일부터 2007년 3월 31일까지 1년간 벌어진 소송건수의 93.7%는 <D 보험사>가 가입자를 상대로 건 소송이었다. 소송당할까 무서워 어디 보험 들겠는가?
2006년 9월 30일까지 자료에는 소송가액이 무려 1조 3천 800억 원대에 달했는데, 2007년 3월 31일자 자료에는 소송가액이 공시되어 있지 않다. 1조 원을 훨씬 웃도는 <미지급 보험금>을 보험사는 비용 처리해 잠재우는 한편, <자산>으로 굴려서 막대한 투자이익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보험회사는 보험가입자와의 계약을 성실히 이행(履行)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분노하고 슬펐던 것은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와 맺은 계약마저도 지키지 않으려고 보험가입자에게 공갈(恐喝)과 협박(脅迫), 그리고 형사소송을 벌이는 것이었다.
p. 243~245에서 인용, 내용설명 삽입, 수정했음.
보험가입한 자체가 범죄?
보험사기로 처벌 받는 케이스 중 흔한 것이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데 입원보험금을 <노리고> 입원진료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1인당 입원비가 고액(高額)일 때 더 심하게 따진다. 환자가 의사의 허락을 받고 외출이나 외박을 했다고 해도 <허락했다는 증거>는 없고, 의료진이 환자 나간 걸 몰랐다고 발뺌하면 의료진에 대한 처벌은 없다.
한 가입자가 보험사기로 조사를 받기 시작하면 모집인과 의료진들은 이직(移職)을 했든, 환자가 기억나든 안 나든 <참고인> 자격으로 줄줄이 소환당해 취조를 받아야 한다.
특히 수년에 걸쳐 반복해서 보험금을 받은 경우는 언제든지 <보험금을 노린 사기(詐欺)>로 조사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보험 가입자가 보험에) 가입할 때 (보험회사와 금융감독원은 보험가입자의) 중복보험, 다수보험을 차단하고, 지금이라도 고액 보험금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는 계약이라면 무효 처리해서 보험료를 돌려 줘야 할 텐데, (보험회사와) 금융감독원은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보험금을 받는 가입자를 지켜보며 조용히 <보험사기 지표>를 만들고 있다가, (보험사기 지표가) 30점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느닷없이 보험금을 노린 사기꾼으로 내몬다. 이는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필자(김미숙)는 금융감독원 보험조사실에 혹시 필자(김미숙)의 명의(名義)로 관리되고 있는 정보가 있다면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나의 <개인정보>가 정부기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보험사기 내사(內査)용>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이 대목을 보고 있는 독자라면 금융감독원에 <정보공개 요청>을 해 보자. 받을 수 있을지는 독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독자들은 <보험 가입한 것 말고는 아무 죄가 없는데 설마...>하겠지만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호소하는 (보험) 가입자들이 의외로 많다.
모 국회의원은 17대 마지막 국정감사(國政監査) 브리핑을 통해 <2003년부터 2007년 6월까지 3만 163명의 보험사기 혐의자(嫌疑者)를 적발했으며, 이들 중 90%는 사법처리된다>고 발표했다. 90%의 사법처리자 중 과연 몇 %나 <유죄 선고>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緘口)했다. 또 10%의 무혐의, 기소유예(起訴猶豫) 등 누명(陋名)을 쓴 혐의자가 당했을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재판을 받은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아파서 치료 중인 <환자>들이다. 구속되고 수사 받고 재판 결과에 따라 감옥에도 갔다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들의 목소리는 힘센 보험사의 언론플레이에 가려 들리지 않는다.
보험사들은 보험사기(保險詐欺) 때문에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90%나 사법처리 되었다면 어느 정도는 지급했던 돈을 회수했을 것 아닌가? 그런데도 올리면 올리는 대로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온 <선량(善良)한> 가입자에게 그들의 <초과 이익>을 돌려준다는 말은 없다. 또한 <범죄자>의 진료비는 지급불가 대상일진데, 이들의 명단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통보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이 또한 진료비 환수 절차를 밟아야 할 텐데, 이를 이행했다는 소리는 없다. 사법부는 국민재산의 <누수(漏水)>는 상관없고 보험사의 <이익(利益)>만 중요한가 보다.
이렇듯 한쪽에선 (보험에) 가입시키기 바쁘고 한쪽에선 보험사기꾼 잡는다고 북새통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현실이지만, 사소하게 느껴지는 고지의무(告知義務) 위반 건도 일단 검찰이나 경찰로 넘어가면 누명(陋名)을 벗기가 무척 힘들다. 하물며 고액의 보험금이 관계된 문제라면 그 강도(强度)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쯤은 왜 보험사에 보관되어 있는 <보험계약청약서> 원본을 다시 확인해봐야 하는지 짐작이 가리라 믿는다.
※. 보험사기 사법처리 현황 (단위 : 명)
|
구 분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
구속기소 |
545 |
479 |
781 |
1,256 |
956 |
944 |
|
불구속기소 |
734 |
772 |
1,568 |
2,453 |
3,821 |
5,914 |
|
수배 |
166 |
189 |
329 |
461 |
325 |
594 |
|
수사 중 |
55 |
157 |
25 |
104 |
478 |
274 |
|
무혐의 등 |
339 |
296 |
596 |
1,097 |
438 |
456 |
|
파악 불가 |
162 |
15 |
24 |
99 |
185 |
282 |
|
합 계 |
2,001 |
1,908 |
3,323 |
5,470 |
6,203 |
8,464 |
∝. 출처 : 금융감독원 2006. 3. 13/2007. 2. 14 보도자료 기준. 보험소비자협회 제공
p. 246에서 인용, 내용설명 삽입, 수정했음.
보험사기, 남의 일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홈페이지의 <인터넷 보험범죄 신고센터>를 통해 <보험사기 신고>를 받고 있다. 그런데 신고대상으로 분류된 항목이 경악할 내용이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의) 그림에 나오는 <사기적인 보험계약 체결 행위>에 <중복보험, 다수보험>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필자(김미숙)의 항의로 현재 두 단어는 쑥 빠져 있다. 그러나 실상 <중복 보험, 다수 보험>은 <보험사기 지표>의 점수를 올리는 한 항목이다. 또 <기왕증(예전에 걸린 적이 있는 질병과 증상), 직업 등의 중요한 사항을 은닉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도 보험범죄 신고대상이자 <보험사기 지표>로 삼는 중요한 대목이다.
자, 이제 왜 필자(김미숙)가 앞에서 누누이 (보험가입자가 자신에 관련된 각종 변동사항을 보험회사에게 일일이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 위반은 <콩밥> 먹을 일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가? 여기까지 읽으면서도 설마 했던 분이라면 <번쩍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왔길 바란다. 보험사가 가입단계부터 쳐놓은 이중 삼중의 <보험금 누수방지 시스템>은 (보험가입자가 보험회사에게) 자칫 (고액의) 보험금을 달라고 했다간, 형사처벌 받고 패가망신(敗家亡身)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보험회사에 대한 보험가입자들의 원성(怨聲)이 하늘을 찌른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금잔(金盞)의 맛좋은 술은 천백성(千百姓)의 피요,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性膏)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按酒)는 만백성(萬百姓)의 기름이니.
촉루락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도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怨望) 소리도 높더라.
- 판소리 <춘향가(春香歌)>에서 거지로 변장(變裝)한 암행어사(暗行御史) 이몽룡(李夢龍)이 변사또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풍자(諷刺)한 시(詩)
나는 이 책을 보면서 2가지 문제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사회제도와 법률을 어떤 방식으로 개선(改善)해도,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속임수와 사기(詐欺)를 피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_-;;
1. 사회제도와 법률을 어떤 방식으로 개선(改善)해도,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사회제도와 법률이 복잡해짐에 따라, 사람들의 속임수와 사기(詐欺) 수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자왈(子曰),
공자(孔子)가 말했다.
도지이정(道之以政), 제지이형(齊之以刑),
법률(法律)과 형벌(刑罰)로써 나라를 이끌어 가면,
민면이무치(民免而無恥).
사람들이 법률(法律)의 약점을 이용해서 형벌(刑罰)을 면(免)하려고만 생각하고, 혹시 단속에 걸리더라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재수 없이 걸렸다.(=법률을 어기는 다른 놈들은 그냥 두고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만 생각한다.
도지이덕(道之以德), 제지이례(齊之以禮),
그러나 도덕(道德)과 예절(禮節)로써 나라를 이끌어 가면,
유치차격(有恥且格).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껴서, 도덕(道德)과 예절(禮節)을 통해서 스스로 품격(品格)을 지킨다.
-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
천하다기휘(天下多忌諱), 이민미빈(而民彌貧),
천하에 규제(規制)와 금령(禁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민다리기(民多利器), 국가자혼(國家滋昏),
사람들에게 이로운 도구(=기계, 전자제품, 신용카드,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등)가 많아질수록, 나라는 더욱 혼란해지며
인다기교(人多伎巧), 기물자기(奇物滋起),
사람들의 재주(=선물[先物, Future], 옵션[Option], 스왑[Swap] 같은 파생금융기법을 이용한 첨단 금융상품)가 교묘(巧妙)해질수록, 속임수와 사기(詐欺) 수법은 더욱 많아지고
법령자창(法令滋彰), 도적다유(盜賊多有).
법령(法令)이 정비될수록, 도적(盜賊)은 더욱 늘어난다.
- <도덕경(道德經)> 제57장
또한, 사회적인 약자를 위한 법률을 만들려고 해도, 사회적인 강자(=기득권 세력)들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도 법률규제를 피해간다.
고선용병자비여솔연(故善用兵者譬如率然)
고(故)로 전투를 잘 하는 자(=사회적인 강자=기득권 세력)를 비유하면 솔연(率然)과 같다.
솔연자상산지사야(率然者常山之蛇也)
솔연(率然)이란 상산(常山)에 사는 뱀을 말하는데
격기수즉미지(擊其首則尾至)
머리를 공격하면 즉시 꼬리가 덤비고
격기미즉수지(擊其尾則首至)
꼬리를 공격하면 즉시 머리가 덤벼든다.
격기중즉수미구지(擊其中則首尾俱至)
가운데 허리를 공격하면 즉시 머리와 꼬리로 덤벼든다.
- <<손자병법(孫子兵法)>>의 <구지(九地)>편
2.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속임수와 사기(詐欺)를 피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속임수와 함정(陷穽)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세상물정(世上物情)과 인심(人心)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많은 위험(危險)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물정(世上物情)과 인심(人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은 매우 적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는 우리가 대비(對備)하지 못하고 견뎌 내야 할 위험이 많다.
내가 이 책을 보고 보험회사의 속임수를 알고 대비한다고 해도,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다른 조직의 속임수나 함정에 내가 빠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아아, 나의 좁쌀 같은 지식으로 수미산(須彌山) 같이 많은 삶 속의 장애물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래 글은 <이용범(2005). 꽃을 드니 미소짓네. 바움>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p. 32~34에서 인용, 수정했음.
원출처 불경(佛經) - 중아함경(中阿含經) 제60권 불설전유경(佛說箭喩經),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5~25권.
네 몸의 화살부터 뽑아라!
어떤 수행자(修行者)가 석가모니(釋迦牟尼)를 찾아와 물었다.
<세계는 영원한 것입니까, 아니면 덧없는 것입니까?>
<......>
<세계는 무한한 것입니까, 아니면 유한한 것입니까?>
<......>
<살아 있는 것이 사람의 몸입니까, 아니면 살아 있는 것과 사람의 몸은 다른 것입니까?>
<......>
<그럼,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끝마침이 있습니까, 아니면 끝마침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까?>
<......>
석가모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에게 되물었다.
<그걸 왜 묻는가?>
수행자가 대답했다.
<만약 이런 의문을 풀지 못하다면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석가모니는 수행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의문을 반드시 풀려고 한다면, 그대는 의문을 풀기도 전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석가모니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산길을 걷다가 숲 속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았다. 그가 맞은 화살에는 무서운 독이 들어 있었다. 온몸으로 독이 퍼지자 그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호소했다. 친족들은 곧 의원을 부르려고 했다. 그때 화살을 맞은 사람이 친족들을 말리며 말했다.
<아직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됩니다. 먼저 내게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그놈의 성(姓)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목적으로 활을 쏘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놈을 찾아내려면 먼저 화살을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맞은 화살이 뽕나무로 만든 것인지, 물푸레나무로 만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 화살 깃이 매의 털로 되어 있는지, 아니면 독수리 털로 되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놈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일일이 화살과 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가 꼼꼼하게 살펴보는 동안 그의 몸에는 이미 독이 퍼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석가모니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수행자에게 말했다.
<독화살(=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을 빼내는 것이 급한가, 아니면 화살을 쏜 사람을 찾는 것이 급한가?>
지혜(智慧)가 사람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때, 지혜(智慧)로운 것은 단지 사람을 슬프게 만들 뿐이지.
- 소포클레스가 쓴 희곡 <오이디푸스(Oidipous) 왕> 중에서 눈이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Teiresias)가 오이디푸스(Oidipous) 왕에게 한 말
절학무우(絶學無憂)
학문(學問)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 <도덕경(道德經)> 제20장
지혜(智慧)가 많아지면 번뇌(煩惱)도 많아지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 걱정도 많아집니다.
- <<기독경>>의 <전도서> 1장 18절에서
위학일익(爲學日益),
학문(學問)을 하면 (지식, 근심걱정, 선입견과 편견이) 날로 늘어가지만,
위도일손(爲道日損)
도(道)를 닦으면 (지식, 근심걱정, 선입견과 편견이) 날로 줄어든다.
- <도덕경(道德經)> 제48장
지자불언(知者不言),
(도를)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언자부지(言者不知).
(도를)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 <도덕경(道德經)> 제56장
책은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고,
공부만 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 <<기독경>>의 <전도서> 12장 12절에서
오생야유애(吾生也有涯), 이지야무애(而知也无涯).
인생은 유한(有限)하고, 지식은 무한(無限)하다.
이유애수무애(以有涯隨无涯), 태이(殆已).
유한한 인생으로 무한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편
인식능력(認識能力)은 인간의 본성(本性)이요, 인식대상(認識對象)은 사물의 법칙이다. 인식능력인 인간의 본성을 써서 인식대상인 사물의 법칙을 탐구하면서, 일정한 한도(限度)가 없으면 평생을 바쳐도 두루 정복할 수 없다. 사람이 비록 수십만 가지의 법칙을 꿰뚫었을지라도, 만물의 모든 변화에 통달할 수는 없는 일인즉, 어리석은 사람과 마찬가지다. 몸은 늙고 자식들은 장성하도록 학문해도 어리석은 사람과 마찬가지건만, 끝내 그만둘 줄 모른다면 그런 사람은 바로 망령(妄靈)된 학자(學者)이다.
따라서 학문(學問)이란 진실로 머물 데를 배우는 데에 있다.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 다름 아닌 <성인(聖人)의 도(道)>[=공자(孔子)의 학문=유학儒學)]이다.
- <<순자(筍子)>>의 <해폐(解蔽>편
지자불박(知者不博),
제대로 아는 자는 많은 분야를 알지 못하고,
박자부지(博者不知).
많은 분야를 아는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 <도덕경(道德經)> 제81장
아래 글은 <김교빈과 김시천이 함께 엮음(2007). 가치(價値) 청바지 - 동서양의 가치는 화해할 수 있을까? : 스무 살을 위한 철학 청바지 4. 웅진지식하우스>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3-3 지식(知識)을 택할 것인가, 지혜(智慧)를 택할 것인가>에서 황희경은 지혜(智慧)에 대한 새로운 해석(解釋)을 보여 주었다. 황희경은 지식(知識)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아는 것이고, 지혜(智慧)는 지식(知識)에 대한 호기심(好奇心)을 그쳐야 하는 곳을 아는 것이라고 개념(槪念)을 재정의(再定義)했다.
자왈(子曰)
공자(孔子)가 말했다.
유 회여지지호(由! 誨女知之乎!)
<유(由,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로子路)야! 내가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마.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시지야(是知也)
이것(=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이다.>
-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서
계로 문사귀신(季路 問事鬼神).
계로(季路,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라고도 부름)가 귀신(鬼神)을 섬기는 일을 물었다.
자왈(子曰).
공자(孔子)가 말했다.
미능사인(未能事人), 언능사귀(焉能事鬼).
<아직 사람을 섬기는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鬼神)을 섬기는 방법을 알겠느냐?>
감문사(敢問死).
계로(季路) : <감히 죽음에 대해서 묻습니다.>
미지생(未知生), 언지사(焉知死).
공자(孔子) : <아직 삶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서 알겠느냐?>
- <<논어(論語)>>의 <선진(先進)> 편에서
p. 213~215에서 인용, 수정했음.
그침을 아는 것이 지혜다/황희경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동양에서는 그침을 아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유가(儒家)의 주요 경전인 <대학(大學)>은 첫머리에서 <대인(大人)이 하는 학문의 길은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고(明明德), 사람들과 친(親)하게 지내는 데에 있으며(親民), 지극한 선(至善)에 머무는 데에 있다(止於至善)>고 학문의 길에 대해 강령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그침을 알게 된 이후에 안정될 수 있고(지지이후유정,知止而後有定), 안정된 이후에 생각할 수 있으며(정이후능려,定而後能慮), 생각한 이후에 얻을 수 있다(여이후능득,慮而後能得)>고 하면서 <그침을 아는 것(知止지지)>의 효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압축적인 강령(綱領)이 없었다면 <논어(論語)>에 나오는 수많은 대화가 아무리 주옥같은 말들로 이루어졌더라도 하나의 원리로 관통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비단 유가(儒家)의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장자(莊子)도 <배움을 중시하는 자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려고 한다. 행동을 중시하는 자는 분변(分辨,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할 수 없는 것을 분변(分辨)하려고 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데에서 그치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이다>라면서 그침을 아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그친다> 또는 <머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그 너머에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暗示)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지극한 선(至善)에 머문다는 것은 지극한 선(至善)의 너머에 지극히 악한 세계가 있거나 선악(善惡)을 나눌 수 없는 세계 등이 존재할 수 있지만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장자(莊子)의 경우도 그가 알 수 없다고 한 이유가 사물 자체의 성질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 인식능력(認識能力)의 한계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종종 어린 아이가 던진 <왜?>라는 질문에 당혹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늘은 왜 파래?>
<그런 거 묻지 말고 공부나 해.>
<왜 물으면 안 돼?>
<어린애는 어른 말을 잘 들어야지.>
<왜 어린애는 어른 말을 잘 들어야 돼?>
<......>
어린아이의 순진한 질문으로 우리의 지적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 지가 폭로(暴露)되고 만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궁금해 하는) 그런 것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유가(儒家)의 학문적 이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에 있으므로, 그들의 목표는 당연히 앎 자체가 아니었다. 이를 좀 어렵게 말하면 그들의 관심사는 윤리학이나 정치학에 있었지, 지식 자체나 인식론(認識論)에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공자(孔子)는 <괴이하거나 무력을 사용하거나 어지럽거나 신기한 일(괴력난신怪力亂神)[“논어論語”의 ‘술이述而’편]>에 대해 말하는 것을 회피했다. 또한 죽음이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귀신(鬼神)에 관해서는 경원(敬遠)시했다. 공자(孔子)의 관심사는 현세적(現世的)이고 실용적(實用的)이며 정치적(政治的)인 범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공자(孔子)는 그것을 지혜(智慧)롭다고 본 것이다.
도가(道家)의 경우는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장자(莊子)의 경우 그가 부력(浮力)의 원리를 알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물의 두께가 두껍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만약 한 잔의 물을 마당에 부어 놓으면 작은 풀은 그 위에 배처럼 띄울 수 있지만 그 위에 잔을 올려놓는다면 그냥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물은 얕고 배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자(莊子)는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Eureka, 찾았다)!>라고 외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가지고 물체의 질량(質量)이나, 중력(重力)과 물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공식화하지도 않았다.
장자(莊子)는 이 비유(比喩)를 통해 붕(鵬)새가 9만 리 창공(蒼空)을 날아 남쪽으로 갈 수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큰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풍부한 지식이나 지혜, 운수가 <두껍게 쌓여 있어야(적후積厚)>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과학적인> 지식의 싹을 가지고 <인생학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가(道家)의 경우도 무한히 솟구치는 앎에 대한 욕구를 유한한 인생에 관한 지혜를 얻는 곳에서 멈추고 있다. 앞에서 잠시 밝혔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는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본 것이다.
사람이 가진 인식(認識)의 한계(限界)에 대한 진화심리학(進化心理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아래 글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지음, 김한영 옮김(2007).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 -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 소소>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p. 859에서 인용, 수정했음.
의식(意識), 자아(自我), 자유의지(自由意志), 존재(存在)의 의미(依微), 지식(知識)의 확실성(確實性) 등의 철학적인 문제들이 어려운 것은 아마도, 그것들이 신성(神聖)하거나 환원불가능(還元不可能)하거나 무의미하거나 현실적인 과학이기 때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마음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인지적(認知的)인 장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천사(天使)가 아니라 유기체(有機體)이고, 우리의 마음은 진리(眞理)로 통하는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기관이다. 우리의 마음은 조상들의 생사(生死)를 좌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연선택(自然選擇)에 의해 진화(進化)했지, 정확함을 벗삼기 위해서나 온갖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단기 기억에 1만 단어를 담지 못한다. 인간은 자외선(紫外線)을 보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4차원으로 회전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의지(自由意志)나 감각력 같은 수수께끼도 풀지 못할 것이다.
p. 864~865에서 인용했음.
우리가 의식(意識), 자아(自我), 지식(知識)의 수수께끼들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인 것은 그 문제들의 본질과 자연선택(自然選擇)이 우리에게 갖춰 준 계산 장치들 간의 불일치 때문일 것이다.
이 추측이 옳다면, 우리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괴롭힘을 선사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정하기 힘든 존재인 우리의 의식은 영원히 우리의 개념적인 이해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마음이 자연의 일부라면, 그것은 기대할 만한 일이고 심지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자연계는 생물체들과 그 부분들의 특화된 설계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독수리가 땅 위에서 어색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들을 놀리지 않고, 눈이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해서 초조해하지 않는다. 하나의 설계는 다른 과제들과 타협할 때에만 자신의 과제를 탁월하게 해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불가사의(不可思議)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좌절감(挫折感)은 인간의 마음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 즉 단어와 문장, 이론과 방정식, 시와 선율, 농담과 이야기의 세계를 열었던 조합적인 마음을 얻기 위해 지불한 비용일 것이다.
인인심야(仁人心也)
인(仁=다른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은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마음이고,
의인로야(義人路也)
의(義=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는 사람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사기로이불유(舍其路而弗由)
길(의義=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방기심이부지구애재(放其心而不知求哀哉)
마음(인仁=다른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을 버리고 찾지 않으니 슬픈 일이다.
학문지도무타(學問之道無他)
학문의 도리(道理)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기방심이이의(求其放心而已矣)
<잃어버린 마음>[=방심(放心)=인(仁)=다른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 <<맹자(孟子)>>의 <고자(告子)>편 상(上)
결국, 우리가 아는 지식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위험과 어려움을 모두 해결할 수 없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자갈이 많은 길에서 자갈을 모두 치울 수는 없지만, 좋은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아프지 않다.
- 석가모니(釋迦牟尼), <아함경(阿含經, Agama Sutra)>
아래 글은 <풍우란(馮友蘭, 펑유란) 지음, 박성규 옮김(2002). 중국철학사 상(上) - 까치글방 154. 까치>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p. 393에서 인용, 내용설명 추가, 편집했음.
만일 우리가 <사생(死生)을 같은 일로 여기고, 옳고 그름을 한통속으로 여길[“장자莊子”의 ‘덕충부德充府’편]> 수 없다면, 인간세상에서 아무리 교묘하게 회피(回避)하든, 결국 완전히 <화(禍)를 면(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른바 <만물의 실상(實狀) 혹은 사람들의 전통적인 관계인즉, 결합(結合)되면 분리(分離)되고, 성취(成就)되면 훼손(毁損)되며, 청렴(淸廉)하면 좌절(挫折)당하고, 존귀(尊貴)하면 비방(誹謗)당하며, 업적(業績)을 이루면 마멸(磨滅)되고, 현능(賢能)하면 모함(謀陷)받으며, 어리석으면 속임을 당하는 즉, 무엇하나 기필(期必)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재주가 있고 없고를 막론(莫論)하고 누구나 복(福)만 받고 화(禍)를 당하지 않도록 기필(期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인(至人=도를 깨달은 사람)의 경우는 <사생(死生)도 그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 끼칠 수 없거늘, 하물며 이해(利害)의 말단(末端)이랴?[“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편]>, 지인(至人)은 이해(利害)를 이해(利害)로 여기지 않으므로 이해(利害) 때문에 상처받지 않아 진정으로 <화(禍)를 면(免)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는 <도(道)와 덕(德)을 타고 소요(逍遙)하는> 사람이 <사물을 부릴 뿐 사물에 의해서 부림당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다. <사물을 사물로 부릴 뿐, 사물에 의해서 사물로 부림당하지 않는> 사람은 늘 모든 것에 능동적(能動的)이지 피동적(被動的)이지 않다.
역사상 어떠한 시대에서든 결국 품은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한 개인의 일생 가운데서도 결국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마주치게 마련인데, 이것들이 모두 문제이다. 장자(莊子)의 철학은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 뜻을 이루어줄 수도 없고, 또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을 뜻대로 되게 해줄 수도 없다. 장자(莊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에게 하나의 정신적인 경지(=깨달음을 얻은 상태)에 이르도록 해줄 뿐이다. 그런 정신적인 경지에 이른 사람(지인至人=도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이 문제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다만 문제를 취소할 수는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반드시 해결할 수는 없고, 다만 취소할 수 있을 뿐인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절명시(絶命詩, 죽기 전에 쓴 시)/황현(黃玹)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江山)도 찡그리니,
무궁화(無窮花) 이 나라가 이제는 망했구나.
가을에 등불 아래서 책을 접고 천고(千古)의 역사(歷史)를 생각하니,
세상에 지식인(知識人) 노릇이 참으로 어렵도다.
이 시는 황현(黃玹)이 1910년에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자, 자살(自殺)하면서 죽기 전에 쓴 시이다.
자왈(子曰)
공자(孔子)가 말했다.
덕불고(德不孤)
<덕(德,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을 쌓은 사람은 외롭지 않다.
필유린(必有隣)
왜냐하면, 덕(德,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을 쌓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 <<논어(論語)>>의 <이인(里仁)>편에서
덕장위여미(德將爲汝美).
덕(德,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이 장차 너희를 아름답게 하리라.
- <<장자(莊子)>>의 <지북유(知北遊)>편
2008102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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