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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기계는 영원하다

최종천 시집

최종천 지음| 반걸음 |2019년 06월 04일 (종이책 2018년 06월 0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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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일 2019년 06월 04일 (종이책 2018년 06월 07일 출간)
    포맷용량 ePUB(8.70MB, ISBN 9791196396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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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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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어

# 한국현대시

노동해방은 원천 봉쇄되었다

도서출판 삶창의 새 문학 브랜드인 (주)반걸음에서 기획한 ‘반걸음 시인선’ 2번으로 최종천 시인의 『인생은 짧고 기계는 영원하다』가 나왔다. 이 시집을 시인 자신은 “아직도 노동해방을 굳게 믿고 있는 노동계급에게 드리는 진혼곡”(‘시인의 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단지 선언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종천 시인은 왜 노동해방은 가능하지 않은지 자신의 경험과 치열한 사유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이렇게 단언한다. “최종천의 범상치 않은 문제적 시집 『인생은 짧고 기계는 영원하다』에 실린 시들은 ‘최후의 노동시’라고 부르는 것이 온당하겠다.” 최종천은 인간의 노동은 신이 전가한 고통이며 인간은 노동을 통해 신을 죽였다. 그리고 오늘날 인간은 기계와 로봇에게 노동을 전가했고, 훗날 인간은 기계와 로봇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목차

시인의 말_5

제1부
사물과 사실·12
사실과 사건·14
노동의 종말·16
집·18
재수 없는 손·20
마스크에 보안경에 귀마개에·22
작업복과 행주·24
떡치기·26
ㄹ,·28
노동의 십자가―현악사중주·30
노동의 십자가―주인과 노예의 변증법·32
노동의 십자가―대상과 메타·34
노동의 십자가―복직 투쟁·36
노동의 십자가―인간 창조·38
무단 주거·40
이번 한 번만은·42

제2부
일一과, 다多·46
카오스·48
빛보다 빠른 것·50
빛의 직진성·52
빅뱅·54
286과 38...

저자소개

최종천

저자 : 최종천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눈물은 푸르다』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고양이의 마술』이 있고, 산문집으로 『노동과 예술』이 있다. 제20회 신동엽창작상, 제5회 오장환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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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사람들이 빽빽이 흐르는 지하상가
사내 하나가 무슨 책을 읽으면서 가고 있다.
적혈구가 지나가며 병균을 먹는 것처럼
사내가 가는 곳은 사람들이 퍼진다.
이상한 예감에 끌려
바짝 붙어본다. 순간 아! 그 찌린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들고 있는 책을 사나이는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가면서
한 줄 한 줄 까맣게 지우고 있었다.
성서였다.
왜 그러시는 거요?
그는 대답 대신 한 줄을 건너뛰고 있었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으리라”
나는 더위를 피해 냉방이 되는
이 지하로 들어와서도 노동을 피해
방황하는 문명처럼 이마에 땀이 흐른다.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노동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노동의 종말」 전문


몸과 정신의 관계에서
몸을 통하여 정신이 일어나는 사실이 세계이기 때문에
정신이 전체이며 몸이 부분이다.
물질은 본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정신은 스스로 표현하지 않으면 비존재로 된다.
정신이 나타나려면 몸을 통해야 한다.

영희는 철수를 사랑한다는 문장은
사랑한다는 표현을 위해 존재한다.
영희와 철수는 바꾸어도 의미가 같지만
사랑하다를 바꾸면 바꾸는 대로 의미가 이동한다.
영희와 철수는 대상이고, ‘사랑하다’는 메타이다.

인간의 피조물인 문명과 인간의 관계도
인간/부분이고 문명/전체의 관계이다. 고로
인간은 문명의 대상이며 문명은 인간의 메타가 된다
인간은 문명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도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형상과 모습대로
문명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문명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문명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십자가-대상과 메타」 전문

나는 인간이 아니라 가축이다.
나는 자본가들의 영양이 풍부한 횟감이며
안줏거리이다. 임금賃金으로 사육되는 인간은,
가축 다음으로 출현한 기계, 노예보다 더
극적인 기계, 기계다운 기계는 선반, 밀링, 드릴,
나는 그들과 함께 사육된다.
나는 화장장으로 가고
선반, 밀링, 드릴은 용광로로 간다.
나는 연기를 통하여 소모되리라.
기계는 연기를 통하여 환생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사육되고 있다.
기계의 호흡은 매연을 만든다.
기계의 영혼을 마시는 자여
인생은 짧고 기계는 영원하다.
―「기계는 영원하다」 전문


그림자는 세 가지를 증거한다.
내가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내가 나라는 사실.
그림자 없는 것들은 모두 허깨비다.
나는 사랑의 그림자를 본 일이 없다.
나는 그리움의 그림자를 본 일이 없다.
나는 희망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였다.
그것들은 해와 함께 있지 않는 것.
나 있을 동안의 해와
그림자 있을 동안의 해
해가 만들어주는 그림자는
존재의 춤이다.
―「그림자」 전문

출판사서평

인간이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노동을 대신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신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동을 대신하게 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이다.
(…)
지금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신을 지배하고 있다.
똑같은 이치로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진실이 이것이다.

_「노동의 십자가-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부분

이 선언 투의 단정이 만일 불편하다면, 시적 기율을 벗어나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 시가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는 진실(새로운 리얼리티)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천 시인은 그의 직관으로 발견한 진실을 말하는 데 있어, ‘반시’적인 행보를 망설임 없이 내딛는다. 노동해방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그의 인식은 신-인간-로봇이 노동의 전가를 통해서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시인이 자신의 노동을 밑바탕 삼아 창세기와 비트겐슈타인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노동해방’은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을 예술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시집에서 명시적으로 그것이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노동과 예술의 대비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예술은 허구이기 때문에 실수와 실패를 즐길 수 있으나/ 노동은 질료인 실체를 다루기 때문에/ 실수와 실패가 용납되지 못한다”(「노동의 십자가-현악사중주」)는 그것을 예각화하고 있지 않은가? “철학은 정확해야 하니, 고립이요 구속이지만/ 시는 해방이다.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요/ 과정이 있을 뿐, 완성은 없다//플라톤은 시의 자유로움을 질투했다.”(「일一과, 다多」) 시인이 “시는 해방”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철학과 대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의 맞은편에 놓아야 할 것은 “정확”이다. “정확”은 노동의 속성이기도 하다.

해방은 깊이를 구축하는 것!

“시는 해방”이라고 하면서 그 예시를 작품으로서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것도 공허한 일이다. 시인은 해방이든 자유든 그것의 실체를 자신의 작품으로서 보여줘야 한다.

나는 가끔 용접을 하다가 말고
바가지를 쓰고 하늘의 태양을 보곤 한다.
용접을 맨눈으로 보았다가는 눈이 멀어버린다.
신을 예수를 통하여 만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반투명의 유리는 그러니까
머나먼 형이상학적 시간과 공간인 셈이다.
그 원리는 십자가와 같은 것
존재가 존재를 건너가 존재를 만난다.
물인가 하면 불이고
불인가 하면 물인 용접
물이 불을 건너가고 불이 물을 건너간다.

_「용접바가지」 부분

이 작품에 대해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는 노동 현장의 가쁜 숨결과 철학적인 통찰, 종교적인 비전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깊이 있는 세계를 빚어내고 있다.” 해방은 따라서 벗어남, 탈주로만 불리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것은 ‘깊이’를 통해서 다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비록 “실수와 실패의 연속”일지라도 말이다. 최종천 시인이 “해가 만들어주는 그림자”를 통해 “존재의 춤”을 발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리어 그는 “그림자 없는 것들은 모두 허깨비”(이상 「그림자」)라고 말하는데, 이런 진술은 속류 유물론에서 나올 수 없다. 도리어 존재를 “그림자”를 통해서 보는 것은 존재의 다른 층위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최종천 시인의 독특한 인식과 표현은 그 자신이 아직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얼핏 관념적인 진술인 듯 보이면서도 마치 “실패와 실수의 연속”인 듯한 구조를 갖는 것은 그의 노동 경험이 꽉 짜여진 듯한 논리를 훼방 놓기 때문이다. 그것을 「과일들」 「ㄹ,」 「민들레역」 「Manganism」 같은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시집은 저돌적인 개념과 빛나는 인식, 그리고 감각적인 어우러짐을 통해 구성되어 있다.

감 하나를 따려고 막 손을 뻗치는 참입니다.
따지도 않았는데 손에는 중량이 맺힙니다.
어젯밤이나 다른 때에
이 골목에서 부끄러운 일이라도 있었던 듯
과일들은 얼굴 가득히 부끄러움을 켜고 있고
그 빛이 반사하여,
내 얼굴이 어느 만큼은 환해집니다.
과일을 따는 일은 그만두고
내 얼굴에 열린 욕심을 따 내립니다.

_「과일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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